西の都 装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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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다자이후시
지정 등 상황 국보(서적)·국가 중요문화재(건조물)
엠블럼

처음에는 다자이후 장관 대리(大宰権帥) 관직으로 다자이후에서 서거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의 묘에서부터 시작되어, 텐만구 안락쿠지(天満宮安楽寺)라고도 불렸습니다. 헤이안(平安)시대(784~1185년)에는 중국에서 유래된 ‘곡수의 연(曲水の宴)’ 등의 행사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문인으로도 칭송받아 귀족과 무사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참배를 하였습니다. 문예의 성지가 되어 연가(連歌-두 사람 이상이 와카(和歌)의 상구와 하구를 서로 번갈아 읽는 형식의 노래) 등이 끊임없이 봉납되고 있습니다. 또한 당나라 서책인 ‘한원(翰苑)’의 헤이안 시대 사본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고려에서 보낸 사신인 ‘고유(高柔)’가 참배하고 시를 봉납하였습니다. 본전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통행사와 어우러진 경내에 들어서면 고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문예와 학문에 뛰어났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다이고천황 시대에 우대신까지 승진했지만 좌대신이었던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의 계략으로 다자이후로 좌천되고 903년에는 실의에 빠져 죽었습니다. 미치자네의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우차에 실어 옮기려고 했을 때 갑자기 소가 움직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미치자네의 의지라 생각하고 그곳을 묘소로 썼다고 전해집니다. 905년에 묘소 위에 사당이 세워지고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안라쿠지가 창건되었습니다. 919년에는 다이고천황의 명으로 신전이 세워지고 현재의 다자이후텐만궁이 되었습니다. 현재 본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1591년에 재건한 것으로 누문을 지난 정면에 웅장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생전에 희대의 문인·학자로서 활약한 미치자네를 추모·숭경하는 마음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어져 지금도 문예·학문의 성지로서 열띤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다자이후시 캐릭터/
나그네 다비토·종자 다빗토·
레이와공주

전국에 알려진 다자이후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추천할 곳은 여러 곳 있지만 최근 주목할 곳은 경내 곳곳의 현대 아트. 세계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자이후의 역사를 내포한 깊은 정신성을 가진 것 등 생각에 잠기는 작품들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옛것도 새로운 것도 받아들여 다자이후의 문화 발신을 담당해 온 다자이후텐만궁만의 도전입니다.

우편번호 818-0117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사이후 4정목 7-1

니시테츠 다자이후역 에서 도보 약 5분

고대 일본의 ‘니시노미야코’ イメージ画像

1300년 전 지쿠시 땅에 탄생한 ‘니시노미야코’. 동아시아에 꽃피운 장대한 국제 교류 도시의 스토리는 후쿠오카현 지쿠시노시·가스가시·오노조시·다자이후시·나카가와시·우미마치, 사가현 기야마초에 펼쳐져 있습니다.